추상(秋霜)논객 이상일 칼럼
문학과 역사의 길, 그 다른 시선과 역할
[SNS 타임즈] 문학과 역사의 차이점에 대한 논의가 여류소설가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국민들은 이를 놓고 또다시 이념적으로 극단적인 분열된 양상을 보였다.
특히 보수 이념을 가진 진영에서는 한강의 소설 '아직 끝나지 않는 이야기', '작별하지 않는다'와 '소년이 온다'가 '6.25 한국전쟁', '제주 4.3사건'과 '광주 5.18'을 좌파적 시각으로만 기술한 역사 왜곡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최근에는 한강의 삼촌 한충원 목사가 공개 편지에서 조카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면서도 한강의 문학관과 역사관에 관해 문제를 제기했다. 한 목사는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인해 한승원 형 가문이 구원으로부터 더 멀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함으로써 문학과 종교의 본질과 차이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한충원 목사는 한강의 아버지이자 형인 소설가 한승원 가문과는 수십 년 단절된 상태로 지내온 것을 보면, 평소에도 이념관과 종교관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일제 치하로부터 해방된 이후 이념적으로 어수선한 정국 상황에서 촉발된 제주 4.3사건을 놓고, 역사는 공산주의자들의 경찰서 습격으로 시작할 것이고, 문학은 거두절미하고 사악한 경찰이 민중을 살해하는 데 시선을 모으고 침착하는 것으로 시작할 것이다.
이처럼 역사가는 빛과 그림자 중 빛을, 산봉우리와 골짜기 중 산봉우리 위주의 시각으로 기록하는 반면, 소설가 등 문학가는 그림자와 골짜기에 침착해서 피해, 부조리와 불의를 파헤칠 것이다.
소설가 이병주는 한국의 현대사를 다룬 실록대하소설 '산하'에서 "태양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라는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명구를 남겼는데, 평소 이병주는 "역사는 산봉우리를 쓰는 데 비해 이병주는 골짜기를 쓴다"라고 말한 데서 역사와 문학이 기록하는 역할은 같지만 문학이 어디를 지향하는지를 잘 시사하고 있다.
역사는 사실을, 문학은 관용을 추구한다. 문학이 사실만을 강요하면 문학이 아니고, 역사에 관용을 반영하면 역사가 아니다.
빛과 그림자 양면 중, 역사는 빛에 치중하고, 문학은 그림자에 시선을 맞춘다. 문학이 빛에 맞추면 권력에 아부하는 국뽕 문학으로 추락하고, 역사가 그림자에 시선을 맞추면 왜곡된 민중 역사, 야사, 신화, 전설이 되어버린다.
문학은 사실을 그대로 기록하는 게 아니라, 감성 윤리 영역이자 피해자를 위로하고 거대한 역사의 피해자들을 살피는 게 문학의 역할이다. 그러나 역사는 엄정한 비판과 평가가 따르는 책임 윤리의 영역으로 의도뿐 아니라 결과까지 이성적 영역이어서 관용적이어서는 곤란하다.
한강의 작품을 이념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국민 모두가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축하해야 한다는 축하의 강요 역시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문학을 역사적 시각으로 재단해서는 곤란하고, 역사 역시 문학적 시각으로 재단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문학이 나가는 길과 목적지는 역사의 그것과는 엄연히 달라야 하고, 양자간을 별도의 분리된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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