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 영화 '하얼빈'... 같은 제목 다른 해석
김훈의 문학성과 우민호 감독의 연출 비교. 소설 작품은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 그리고 안중근의 가족이라는 세 갈래 동선이 하얼빈으로 수렴되는 구조를 보인다.
2022년 발표된 김훈의 장편소설 '하얼빈'과 최근 개봉한 현빈 주연의 동명 영화를 비교하면 흥미로운 차이점이 드러난다.
소설 '하얼빈'은 이 시대의 문장가이자 소설가인 김훈이 2022년에 발표한 안중근에 관한 장편소설로 최근 '하얼빈'이란 동명의 영화가 개봉됐다.
2년 전 소설 '하얼빈'을 재미있게 읽은 터라 기대를 걸고 2025년 첫날 오랜만에 관람했다. 그러나 영화는 소설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소설 '하얼빈'의 내용을 어떻게 영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궁금했었는데, '하얼빈'이란 소설과 영화는 이렇게 달랐다.
소설 '하얼빈'
김훈이 지은 소설 원제목은 '하얼빈에서 만나다'였는데, 출판사 편집자가 제목이 길면 임팩트가 없고 늘어져 판매부수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해서 편집자의 제안을 받아들여 안중근 의사가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를 사살한 '하얼빈'으로 제목을 정했다고 한다.
소설은 안중근이 담배 장수 우덕순과 함께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전후 6개월 정도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소설에서 3개의 동선이 나오는데 모두 하얼빈을 귀점으로 하고 있다.
이것을 두고 김훈은 '하얼빈에서 만나다'라고 제목을 붙이려고 했던 것 같다.
이토 히루부미는 시노모세키~대련~여순~봉천~장춘을 거쳐 하얼빈으로, 안중근은 신천~서울~부산~원산~연추~블라디보스토크~수분하를 거쳐 하얼빈으로 오고 있다.
안중근의 처 김아려와 두아들, 분도와 준생은 진남포에서~평양~신의주~초하구~봉천~장춘을 거쳐 하얼빈으로 오는데, 하얼빈 거사일 하루 후에 도착한다.
만약 거사일 전에 안중근이 처와 두 아들을 만났다면 목숨을 건 거사를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장면은 작가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밀도 높은 문체로 묘사된다. 이 장면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안중근의 내적 결의와 당시의 긴박한 분위기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김훈은 안중근이 저격을 결행하는 순간의 긴장감과 집중력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총을 겨누는 안중근의 손끝, 그가 숨을 고르는 찰나의 순간 등이 생동감 있게 표현된다. 특히,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에 담긴 결의와 결단이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바람이 멈췄다. 총구는 어딘가에서 밀려오는 시간의 끝에 닿아 있었다. 방아쇠는 그의 손가락 아래에서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총알이 날아갈 길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저격 순간을 묘사할 때, 김훈은 시간의 흐름이 멈춘 듯한 서술 방식을 사용하여 안중근의 초집중 상태를 강조한다. 이로 인해 독자들은 안중근의 감각과 심리 상태에 몰입하게 된다.
"주위의 소음이 멀어지고, 이토 히로부미의 모습만 선명하게 떠올랐다. 총구 앞의 사람은 더 이상 권력이 아니라, 역사의 무게였다."
단순히 한 개인의 저격 행위가 아니라, 그것이 지닌 역사적 의미와 상징성을 강렬하게 드러낸다. 안중근의 총성이 단순한 살해가 아니라, 식민지에 저항하는 민족적 선언임을 암시한다.
"총성은 단 한 번 울렸으나, 그 메아리는 조국의 산천에 영원히 울려 퍼졌다. 그 총알은 단지 육신을 꿰뚫은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눌려 있던 역사의 억압을 찢어냈다."
안중근의 행동이 즉흥적이거나 단순한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깊은 사색과 신념에서 나온 것임을 강조한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이미 알고 있으며,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는 자신이 쏜 총알이 그의 목숨을 앗아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목숨은 이미 조국과 함께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김훈은 이 장면을 통해 안중근의 결단, 희생, 그리고 그가 저격에 담고자 한 신념과 역사의식을 강렬하고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후, 사형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본인 검사에게 솔직하게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려고 심장을 겨냥해서 쏘았다고 진술한다.
그리고 사형 판결을 받은 후에도 상고를 포기하고 '동아시아 평화론'이라는 책을 완성하기 위해 열심히 글을 쓰고, 본인을 지키는 간수들이 안중근의 붓글씨를 잘 쓴다는 것을 알고 글을 부탁하면 붓글씨를 써주기도 하는 등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행동한다.
카톨릭 신자(세례명 도마)인 안중근과 프랑스인 뮈텔 주교 간의 갈등은 주로 신앙과 민족주의라는 두 가지 관점의 충돌을 통해 드러난다. 뮈텔 주교는 신앙을 개인적인 구원에 국한시키는 경향을 보이며, 교회의 질서와 권위를 우선시한다. 이에 반해, 안중근은 신앙을 행동으로 옮겨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진정한 신앙의 표현이라고 본다. 이로 인해, 두 사람 사이에 깊은 신념의 대립이 발생한다.
안중근은 자신의 행위가 단순히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신앙과 결합된 행위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뮈텔 주교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안중근의 신앙을 의심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러한 태도는 안중근에게 실망과 분노를 일으키며, 교회와 자신의 신앙 사이에서 갈등을 심화시킨다.
이 갈등은 단순히 두 인물 간의 의견 차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조선 민족의 독립운동이 직면한 복잡한 상황을 반영한다. 특히, 서구 종교와 조선 민족주의 사이의 긴장과 신앙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작품의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진다. 김훈은 이를 통해 안중근의 내적 갈등과 그의 신념을 심도 있게 묘사한다.
책 부록
소설 하얼빈 말미에 부록으로 안중근의 처 김아려와 자녀들, 장녀 안현생, 장남 안분도(안우생), 차남 안준생 등 거사 이후의 삶에 대해 기록해 놓았다.
안중근의 자녀는 1녀 2남인데, 안중근의 처가 하얼빈으로 올 때 딸 안현생은 카톨릭 자선 단체에 맡기고, 두 아들만 데리고 왔다. 거사 이후 김아려는 어려운 삶을 꾸려왔는데, 장남은 어떤 사람이 건네준 과자를 받아먹고 독살당했다.
일본이 승승장구하던 시기인 1939년 안중근의 아들 준생은 총독부 관리들과 함께 이토 히로부미 위패를 모셔놓은 박문사를 참배하고, 이토 히로부미 아들 이토 분키치와 우연히 만난 것처럼 연출하고선 사죄했으며, 안준생의 사죄에 대해 이토 분키치는 "함께 지성으로 황도를 보필할 것이기에 개인적인 사죄는 필요없다"고 답했다.
이 사과 며칠 후 안준생과 이토 분키치는 함께 박문사를 참배하고 분향했다.
장녀 안현생도 안준생의 박문사 화해극을 벌인 다음 해 남편과 함께 서울에 와서 아버지 안중근의 기일에 박문사를 참배했다.
안중근의 아들과 딸이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과 화해하는 총독부 주도의 연극이 국민들을 실망시켰다.
혁명가 안중근의 처 김아려의 삶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거사 이후 상해에서 죽을 때까지의 삶이 얼마나 피폐했을지 짐작이 간다.
세상 사람들은 안중근 자녀들의 삶을 두고 "범 아버지 밑에 강아지(개 새끼) 아들이 나왔다"고들 탄식했다.
안중근은 한학 교육을 받았고, 신식 교육을 받지 않았으며, 붓글씨도 정식으로 배우지 않았다. 사냥꾼 포수가 직업이었는데,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그 이후의 담대한 처신을 보면,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하얼빈')
영화 하얼빈은 1908년~1909년 2년간을 포커싱한다. 영화는 1908년 신아산전투와 단지동맹으로 시작한다.
치열한 전투 끝에 안중근은 포로로 잡은 모리 소좌 등 일본군을 동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만국공법에 따라 석방하지만, 오히려 모리에게 역습을 받아 동료들을 잃고 충격에 빠진다.
이때부터 모리 소좌는 안중근의 뒤를 끈질기게 쫓게 된다. 그 후 동료들로부터 질책과 의심을 받자 안중근은 동료 11명과 함께 무명지 손가락을 자르는 단지동맹을 하면서 속죄를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겠다고 약속한다.
영화에 관한 일반적인 평은 "영화가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진다", "심리적 풍경화 같다", "장엄한 회화처럼 느껴진다", "미학적인 도전을 한 것 같다" 등의 평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일반적인 오락 영화와는 다른 것 같다.
우민호 감독은 안중근으로만 채우기 위해 화면이 공허한 연극무대처럼 인적이 없는 화면을 자주 연출한다.
오락 영화에 필수적인 서스펜스, 액션 등이 별로 없어 재미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하얼빈 역 장면도 클로즈업이 아니고 위에서 내려다보는 전경 쇼트(부감)로 촬영한 것도 감정 폭발을 절제하려는 의도로 느껴졌다.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이 스포일러여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는데, 실존 인물인 안중근, 우덕순, 최재형 이외에 동료 이창섭, 밀정 김상현, 동료 미망인 공부인 등 가상인물을 설정했다. 김상현이라는 밀정은 별 긴박감을 주지 못했다.
그리고 끝까지 감정적 폭발인 카타르시스가 없어서 밋밋하게 느껴졌다.
하얼빈 역에서의 저격 장면이나 법정에서 일본 검사와 논쟁하는 장면에서 안중근이 감정을 폭발하는 카타르시스를 넣었으면 했는데, 우민호 감독은 고뇌하는 햄릿 같은 안중근으로 그렸다. 우민호 감독은 영웅적인 안중근이 아닌 나약한 부분도 있는 인간적인 안중근을 표현하려 했던 것 같다.
오히려 영화 끝까지 안중근을 추적하는 삭발한 모리 마쓰오의 강력한 캐릭터가 기억에 남았다.
끝까지 감정의 폭발을 자제한 것이 결과적으로 오락 영화로서의 재미를 떨어뜨린 요인이 된 것 같았다.
영화 화면이 전체적으로 너무 어두워서 표정 연기를 볼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고, 전형적인 오락 영화를 기대한 관람객들은 300억 원 제작비를 어디다 썼냐고 불평할 정도로 감동, 웅장, 재미, 스펙터클 등의 오락 영화를 기대한 분들은 만족하지 못할 것 같다.
초반의 신아산 전투신 외에는 스펙터클한 장면이 없어서 넓은 화면을 활용 못한게
아쉬웠다.
전체적으로 배경 음악과 영상은 좋았지만, 좀 아쉬운 점이 다소 있었다. 영화 말미 부분인 열차 신에서 긴박감이 떨어져 지루함이 느껴졌고, 안중근의 교수형 장면으로 끝내지를 않고, 안중근을 추적해왔던 모리 마쓰오가 밀정 김상현에게 김구의 사찰을 지시하면서 돈을 건네자 급습해서 살해하는 뜬금없는 장면을 사족으로 붙힌 군더더기가 영화의 완성도와 몰입도를 떨어뜨린 아쉬움이있었다.
오락 영화의 필수 요소인 신파, 국뽕도, 단골 메뉴인 깔깔 감초 캐릭터도 없이 엄숙 신중 모드로 흘러서 재미가 덜한게 흥행에 마이너스가 된 것 같았다.
그런것이 국내 영화 성공의 잣대인 천만 관객 동원 고지에 오르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은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메오로 정우성이 우정 출연했다는데 영화 중에서 식별하질 못했다.
인간의 캐릭터를 극단적인 이분법으로 나누면, 좌충우돌(左衝右突) 행동파인 돈키호테형과 좌고우면(左顧右眄) 사색파인 햄릿형으로 분류를 할수 있는데, 자신이 햄릿형에 가깝다고 생각하면 이 영화를 감상하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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